DREAM


내 최초의 기억이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지만, 조부모님 집에서 살았을 때 몇 가지 추억들과 다시 서울로 올라갔던 장면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한창 커리어를 쌓아가는 영화 감독으로 경제적 형편이 부족했기에, 어머니와 함께 할아버지 집으로 가는 건 당연했다. 다시 서울로 올 때 이질적인 감정은 아직도 선명히 떠오른다.

나는 영화감독인 아빠를 따라 8살부터 촬영장에 방문했다. 단순히 아빠랑 떨어지기 싫은 어린아이의 마음도 있었지만, 처음으로 경험해 본 촬영장은 마치 거대한 놀이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배우들, 신기한 기계, 바쁘게 움직이는 스탭들, 여기서 최고 권력을 가진 우리 아빠. 모두가 나에게 잘해줬고, 든든한 아빠가 있는 곳에서 나는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아이. 그런 내가 연기자의 길을 가는 건 당연했다. 중요한 씬. 아역 배우의 펑크. 급하게 대타로 투입된 난 안정적인 연기를 했고, 아무런 고민 없이 시작된 배우의 삶은 내 인생 전체를 흔들었다.

처음에는 다 좋았다. 커다란 노력 없이 큰 성공을 이뤘고, 사회에 천재 아역 배우로 내 이름이 거론됐다. 바쁠 때는 학교에 가지 못했지만, 평소보다 아빠를 자주 볼 수 있어 좋았다. 아빠는 연기 실수하면 화내곤 했지만, 이건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빠의 다음 작품에서 주인공의 딸로 빵 뜨게 되고, 그때부터 미친 듯이 스케줄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움직였다. 아동인권은 개나 준 스케줄을 마치고, 티비앞에 녹화된 멜로디 엔젤을 보는 게 소소한 낙이었다.

내가 연기를 하기 전에도 아빠는 항상 엄했다.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고, 엄마는 어디에 맞거나 혼자서 울었다. 할머니 집에서 기다리던 부모님의 모습은 이러지 않았는 데, 막상 경험한 집은 무섭고 두려웠다. 아빠는 나를 때리지는 않았다. 아역 배우를 어떻게 때릴까? 대신 무섭게 분위기를 만들고 자기 말을 따르기를 강요했다. 내게 대본을 보기 강요하며, 엄마를 때리는 소리를 방에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엄마를 죽이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었다. 아빠가 잘 나갈 때는 그나마 덜했다. 영화가 대박 나고 상 받고 인정받을 때, 무슨 모임이라고 집에 들어오지 않던 아빠는 내가 13살 영화가 줄줄이 망하고 술에 의존했다.

이때부터 지옥은 시작했다. 평소에 손찌검을 하던 아빠의 폭력은 점점 심해졌다. 매일 술집을 전전하며, 집에 와서 엄마를 때리는 일에 연속. 집안에 제대로 있는 게 없었고, 네 식구가 살기에 돈이 필요했다. 내가 그동안 모았던 돈은 전부 아빠의 빚으로 나갔고, 엄마는 결혼 이후 놓았던 일을 시작했다. 영화 적자로 생긴 거대한 빛,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빠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벌어야 했다.

내가 일하는 빈도수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내게 들어온 작품을 모두 진행하려고 했다. 하루에 드라마 현장을 3개씩 뛰며 돈 벌기 위해 악착같이 일했다. 내가 원하지 않은 장면이 있어도 해야 했다. 그게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배우라는 직업을 악착같이 한 결과는 좋지 못했다. 새로운 얼굴은 빠르게 자리를 가져갔고, 자연스럽게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돈 버는 대신 학교에 나가 친구를 사귀려고 했으나, 이미 학기 초 무리가 정해진 상태에서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나를 보는 시선은 차갑고 냉정하며, 우리 집 앞으로 체불해야 할 빚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제 무리하게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엄마의 피곤에 찌든 모습을 보면 가슴은 답답해졌다.

중학교 입학 뒤, 혼자 있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모두에게 사랑받던 아이는 점점 외면받는 아이가 됐다. 점심시간이면 혼자 웅크려 앉아 학교 뒤뜰에서 노래 들었다. 휴대폰은 반납하고 구식 MP3로 듣는 음악은 외로웠던 나에게 소소한 위로를 건넸다. 혼자서 밥을 먹던 날에도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터졌을 때도 음악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음악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을 때, 아빠는 다시 영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확실한 자금을 받았다며, 지금처럼 지내 달라는 아빠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새로운 꿈을 욕심내도 될까? 예전보다 떨어지긴 했지만, 아역 배우 수입은 가계에 도움이 됐다. 부모님은 배우를 하는 걸 바라지 않을까?라는 불안함이 있었다. 열다섯. 잠시 일을 쉬기로 했다. 학업을 핑계로 쉬었지만, 이제 연기에 흥미가 없었다. 대본을 봐도 기계적으로 연기할 뿐이다. 내가 이 길이 맞는 건가?라는 번아웃과 함께 음악에 대한 갈증은 심해졌다. 오래 고민 끝에 엄마한테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거센 반대를 했지만, 몇 차례 대화를 통해 내 꿈을 지지해주시기로 했다. 이 날은 펄쩍 뛸 듯 기뻤지만, 아직 최종 보스가 남아 있었다.

결전의 밤. 아빠에게 내 목표를 말했지만, 바로 욕먹었다. 세계적인 여배우가 되길 바랐던 아빠는 내 꿈을 처참히 짓밟았다. 아빠에게 가수에 대한 모욕적인 말을 듣자, 처음으로 설득 대신 반항을 하기로 했다. 주방에 있던 가위로 계속 유지했던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여기서 안 살겠다고 냅다 밖으로 뛰어나갔다. 얇은 자켓과 슬리퍼 하나뿐인 자유가 이렇게 기쁠 수 있는지 처음으로 알았다. 고분고분하던 딸의 반항은 생각보다 파급력이 상당했다. 고지식하고 폭력적인 아빠가 네가 하고 싶으면 하라는 말을 내뱉었기 때문이다. 1년 간의 장기전을 예상한 것과 달리 아빠는 다음날 허락했다. 단, 20살 되기 전까지 데뷔라는 미션과 함께 내 음악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DALBOM